최근 국내 자동차 시장은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 서 있습니다. BYD를 필두로 지커(Zeekr), 샤오미 등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이 국내 진출을 본격화하며 현대차/기아차 중심의 내수 시장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낮은 호감도를 근거로 이들의 성공 가능성을 낮게 평가합니다. 실제로 아산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호감도는 10점 만점에 3.13점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국내 상용차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 버스가 이미 5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했던 선례를 간과하는 위험한 판단일 수 있습니다.

목 차
1. 정책 실패가 만든 틈: 가격 경쟁력을 최우선하는 보조금 구조의 허점
국내 시장의 중국 전기차 잠식은 전기 버스 시장에서 이미 현실화되었습니다. 이는 보조금 지급 정책의 구조적 실패에서 기인합니다.
버스 회사의 경우 만성적인 재정 압박으로 인해 신차 구매 시 초기 구매 가격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 보조금 정책은 품질, A/S, 잔존 가치 등 장기 지표에 대한 충분한 가중치 없이 가격 평등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당 약 1억 원 이상 저렴했던 중국산 버스에 수요가 폭발적으로 몰리며, 2021년 37.8%이던 중국 전기 버스의 점유율은 2023년 한때 54%까지 급증했습니다.
2024년 보조금 기준이 일부 보완되었지만, 여전히 장기적인 품질 및 서비스 관련 가중치가 부족해 중국 브랜드는 강력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능이나 사후 관리를 무시한 채 저렴한 차에만 보조금이 집중되는 정책의 허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 개인 아닌 기업 구매: ‘플릿(Fleet) 시장’ 장악으로 시작되는 침투
중국 전기차가 한국 시장에서 성공할 두 번째 비결은 개인 소비자가 아닌 플릿(Fleet) 시장을 공략하는 것입니다. 플릿은 택시, 렌터카, 영업용 차량 등 기업이나 사업자가 대량 구매하는 시장을 통칭합니다.
개인 구매자가 브랜드 이미지나 잔존 가치 등을 꼼꼼히 따지는 것과 달리, 플릿 구매의 핵심은 초기 비용 절감입니다.
- 택시용 전기차에 별도 보조금이 추가되어 구매 비용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 성능/안전 기준을 충족할 경우 추가 인센티브를 받게 되며, 이는 대량 주문과 할인이 가능한 제조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지커나 BYD와 같은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은 대규모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이 플릿 시장에 저가 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법인 구매를 통해 시장에 침투하는 것이 개인 소비자 취향을 바꾸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효율적인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3. 도로 위의 무상 시승: ‘관찰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경험 확산 전략
플릿 시장에서 판매량이 증가하면, 이는 곧 도로 위 노출 빈도 증가로 이어집니다. 이 노출 증가는 세 번째이자 가장 무서운 침투 경로인 일반 소비자로의 확산을 유발합니다.
- 택시를 타거나, 렌터카를 빌릴 때 중국 전기차를 경험하게 됩니다.
- 영업용 또는 배달용 차량으로 이용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러한 소비자 직접 경험은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인식을 형성하고, 이는 브랜드에 대한 낮은 호감도를 상쇄시키는 핵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경제학적 이론인 ‘혁신 확산 이론’에 따르면, 관찰 가능성이 높을수록 신기술(제품)의 채택 속도는 가속화됩니다. 택시나 렌터카가 사실상 일반 소비자에게 대리 시승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과거 쏘나타/K5가 택시로 많이 쓰이면서 ‘내구성이 검증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처럼, 중국산 전기차 역시 도로에서 자주 보일수록 ‘안전하고 품질도 나쁘지 않다’는 데이터를 쌓게 되며 개인 소비자의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4. 글로벌 경쟁력 약화: 소프트웨어와 ‘레벨 3 자율주행’ 규제의 딜레마
이러한 국내외 위협 속에서 현대차 그룹의 가장 큰 딜레마는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에 있습니다.
벤츠, BMW는 이미 독일 및 미국 일부 지역에서 레벨 3 자율주행을 상용화했으며, 테슬라와 일부 중국 브랜드들 역시 손을 떼고 목적지까지 주행하는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규제 문제로 현대차/기아차의 레벨 3 상용화 계획이 연기되거나 좌절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 소비자뿐만 아니라 글로벌 소비자들은 현대차보다 테슬라나 중국/독일 브랜드에서 더 높은 수준의 소프트웨어 및 자율주행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 시대에는 자율주행이 핵심 경쟁력입니다. 해외 플릿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의 레벨 3 경험이 ‘운전 피로 감소’라는 강력한 장점으로 입소문이 퍼지면, 현대차/기아차의 글로벌 판매량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5. 보수적 정책 변화의 필요성: 잔존 가치와 보안 기준 강화
현재와 같은 중국 전기차 위협에 대응하고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수적이고 정확성을 중시하는 정책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 보조금 기준 현실화: 단순 가격 경쟁력에서 벗어나 부품 조달 능력, 배터리 안전성 검증, 보증 기간/범위, 잔존 가치, A/S 센터 품질 및 개수 등 장기 운용에 필수적인 항목에 대한 가중치를 대폭 늘려야 합니다.
- 제한적 자율주행 허용: 무조건적인 전면 개방은 위험하나, 독일처럼 속도, 도로 종류, 시간대 등을 세분화하여 검증된 구간에서만 레벨 3 자율주행을 제한적으로 허용함으로써 국내 기업이 데이터와 경험을 축적할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 사이버 보안 기준 의무화: 중국 전기차 등 해외 브랜드의 국내 시장 판매 시, 데이터 유출 및 보안 위험에 대비하여 사이버 보안 기준 충족, OTA 추적 제한, 사후 감사 대상 포함 등의 안전 장치를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합니다.
이미 시작된 시장 잠식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중국 전기차에 대한 신속하고 치밀한 대응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